본문 바로가기

D7100 야경

[D7100]D7100과 함깨한 여행지추천 창경궁을 다녀오다.

[D7100]D7100과 함깨한 여행지추천 창경궁을 다녀오다.


안녕하세요. 벌써 서포터즈 미션 6주차 접어드는군요. 
오늘은 미션차 다녀오기도 했지만 평소에 창경궁을 가고 싶어서 시간이 되는 5월5일 어린이날에 다녀왔네요.
야간개장이 5월1일부터 5일 까지였습니다. 
야간개장 마지막날에 가서 그런지 너무 많은 인파로 사진 담는데 애로사항이 참으로 많은 창경궁 여행 출사였지만 
창경궁의 옛문화를 둘러보며 창경궁 야간개장에 맞춰서 쭉 둘러보았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하나하나 감상해 보시죠 ^^






창경궁

 

 일제에 의해 비운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궁



성종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에 창건한 궁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창경궁은 다른 궁궐들보다 수난을 많이 당한 비운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요, 
일제는 궁궐을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동물원, 식물원, 온갖 놀이시설들을 조성하기 위해 기존 건물들을 모두 파괴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1986년 준공되었으나 지금은 몇 안되는 건축물들만이 창경궁을 지키고 있지요. 
홍화문을 시작으로 옥천교, 명정문, 명정전을 지나 식물원과 집춘문, 과학의문, 월근문 등을 차례대로 둘러 볼 수 있습니다.(네이버 발췌)






창경궁 가는법은 지도를 참고하시면 될거 같습니다. 
저는 4호선 혜화역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서 창경궁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창경궁 홈페이지 : http://cgg.cha.go.kr/n_cgg/index.html





창경궁 지도 안내도 입니다. 
저는 야간개장 시간이 촉박해서 춘당저수지까지만 다녀왔습니다. !!



명정문 

 

이 문은 명정전을 둘러싼 월랑 중 명정전과 마주보고 있는 동월랑의 중앙부에 있으며, 

창경궁의 외문인 홍화문보다 안쪽에 놓여 중문의 기능을 갖는 평삼문이다. 

위치로 보아서 명정전의 동서 중심축선상에 정확히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미터 벗어나 있다. 

문의 좌우에 연결된 동월랑을 어느 정도 명정문에 맞추어 배치하였기 때문에, 

이에 의하여 둘러싸인 명정전의 중정(中庭)은 정확한 방형이 아니고 기울어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다포계 건물인데, 

잘 다듬은 원형 주초석 위에 중앙열의 주열(柱列)에는 각 칸마다 2매씩의 육중한 판문을 달아 안으로 열리게 하였다. 

이 건물은 포작(包作)과 건축의 형식으로 보아 명정전과 함께 광해군 때 재건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명정문의 모습입니다. 오자마자 삼각대를 펼치고 풍경을 담기 시작합니다. 

너무 많은 인파로 삼각대 펼치는것 조차 힘들었지만 창경궁의 문화를 조금씩 알아가는 멋진 출사가 된거 같습니다.

 

 

 

명정전


조선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이 조성되고, 그 정전으로서 명정전이 세워졌다. 이때 명정전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과는 달리 남향이 아닌 동향이었다. 
이는 창경궁의 지세에 따른 것이다. 
그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1616)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다른 궁의 정전과 같이 이중의 월대를 두어 그 위에 건물 기단을 마련하고, 큰 사각 주초 위에 원형의 운두 높은 주좌(柱座)를 조각하여 초석을 배열하였다.
월대의 형식은 다른 궁의 것과 달리 지형에 맞추어 전면 동쪽과 북쪽 일부만을 이중단으로 하고, 건물 좌우와 뒷편에서는 1단으로 하였다. 
평면으로 보아 정면 5칸, 측면 3칸에 후퇴(後退)를 한 단층 팔작기와지붕으로 겹처마이다. 

평주 위에는 모서리를 많이 굴린 창방이 놓이고 운두가 낮은 평방 위에 다포계 양식의 외삼출목, 내사출목의 공포를 짜았다. 
건물 사면은 모두 꽃살창으로 돌려져 있는데, 그 위로는 교살창이 있다.
내부 바닥에는 전(塼)을 깔았고, 뒤편 중앙부에는 어좌인 용상이 있는데 그 뒤로 일월도의 병풍이 놓였다. 

그 위로는 닫집으로 짠 보개(寶蓋)가 있고 천정의 중앙부에는 한층을 접어올린 쌍봉문(雙鳳紋)이 있는 보개천정을 장식했으며, 
그 주위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단청은 모로단청을 하고, 특히 천정판에는 화려한 연화문의 반자초 단청(丹靑)을 시문했다.

월대의 전면에는 명정전 어간에 맞추어 중앙에 삼도의 이중계단이 놓였다. 
가운데 어계의 폭은 2.4미터이고, 양측 협계(挾階)의 폭은 각 1.3미터이다. 
상하 계단은 모두 6단씩으로, 어간의 답도(踏道) 석판 중앙에 사분심엽형(四分心葉形) 윤곽을 양각(陽刻)한 후 
그 안에 날개를 활짝 편 한쌍의 봉황을 조각해 장식했고, 챌판에도 당초(唐草)와 보상화(寶相華), 운문(雲紋) 등을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하층 계단 앞에는 명정문과 연결되는 어도가 있고 좌우에 24개의 품계석(品階石)이 있다.

 

 

 


 

 창경궁의 대표포인트는 바로 명정정입니다.!!

5월5일날 가서인지 수많은 인파들로 사진담기가 정말로 어려웠네요. 

2013년 상반기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더욱 그랬구요. 

그래서 사진은 조금만 담고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명정전 앞에서 수많은 인파들이 사진도 담고 역사를 알아가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중간구도로 담고 싶었으나 역시 인파때문에 쉽사리 담지 못하였네요. 

그래서 명정전을 조금만 담고 바로 안쯕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명정문을 여러각도로 담아보았는데 이구도가 가장 맘에 든거 같습니다. 

16밀리 광각으로 처마를 넣어서 담아보았네요. 

 



명정전을 왼쪽으로 담아보았습니다. 

예전에 이곳에서 많은 옛조상들이 거닐었겠지요. 

 



명정전을 정면샷으로 담아보는게 쉽지 않았네요.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린 이유이기도 하구요. 

가을 야간개장때는 평일을 이용해야겠습니다. 창경궁 다시 야간개장 할라나 ㅠㅠ 

 



명정전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앉아 있습니다. 

창경궁의 발자취를 느끼며 저도 앉아보고 싶었지만 역시 사진에 더 관심이 있어서 빠르게 셔터를 눌러봅니다.

 



명정전을 오른쪽으로 해서 담아보았네요. 이 점점 밤이 깊어가니 저도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빠르게 이동하였습니다.

 

 

  

승문당 

 

이 건물은 조선 경종 때 건립되었으며, 순조 30년에 큰 불로 소실된 것을 그해 가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崇文'의 현판과 '日監在玆'라 쓴 게판은 영조의 어필이다. 영조는 특히 학문을 숭상하고 영재를 양성하였는데, 

이곳에서 친히 태학생을 접견하여 시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주연(酒宴)를 베풀어 그들을 격려하기도 하였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홑처마이며, 지형에 따라 앞면에만 방형의 장초석을 사용하여 누각처럼 세웠다. 

기둥 위에는 간단한 초익공의 공포를 짜았고, 기둥 사이에는 화반 없이 굴도리 밑에 장여를 받고 있는 소로만을 끼워 장식하였다.

 평면으로 보아 전후와 남쪽에 퇴간을 두고 마루를 깔았으며, 가운데칸의 마루와 동선을 연결시켰고 그 좌우에 방을 놓았다.

 

 

  



명정전을 지나 뒷쪽으로 진입하면 바로 승문당이 나옵니다. 

이곳을 잠시 거닐며 옛조상은 무엇을 하였을까 잠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좀더 뒷쪽으로 가서 담으면 승문당의 모습이 이렇게 나옵니다.

역시 많은 인파들로 붐비는 모습입니다. 사진 찍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네요 .

 


 

승문당의 정면 모습입니다.

 

 

 

함인정 

 

이곳에는 원래 성종 15년에 지은 인양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인조 11년(1633)에 인경궁의 함인당을 이건하여 함인정이라 한 것이다. 

이곳은 특히 영조가 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짰고, 주칸에는 화반 두 개씩을 놓았다. 

내부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내진주(內陳柱)로 구획된 마루는 한 단 높게 처리하여 

그 위로는 우물천정을 하고 사방둘레의 툇간(退間)에는 연등천정을 하였다 


 

 


 

 함인정의 모습입니다. 이곳에서 장원급제 한분들을 접견했다고 하니 뜻깊은 장소이기도 했었겟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경춘전

 

이 전각은 창경궁의 내전으로 성종 14년에 건립되었다. 그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에 재건하였으나,

순조 30년에 불탄 것을 그 34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이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탄생한 곳이며,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정면 7칸, 전후툇간을 포함해서 측면 4칸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네모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고, 기둥사이에는 두세 개씩의 화반을 놓았다. 

네면에는 모두 세살문을 달았고 그 위에 교살창을 하였다. 

좌우엔 온돌방과 중앙3칸은 마루를 깔았고 천정은 우물천정으로  하였다. 

 

 

 

 

 

경춘전의 모습입니다. 은은한 조명빛이 아름다웠습니다. 

야간에도 좋지만 주간에는 봄꽃도 많이 피고 알록달록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이미 봄꽃시기가 지나 꽃은 없었지만 다음에는 화창한 봄날때 가서 이쁜 꽃사진과 함깨 경춘전을 담아보고 싶네요. 

 

 

 

환경전

 

이 건물은 성종 15년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8년에 중건하였다. 

그 후 순조 30년(1830)의 큰 불로 소실되었던 것을 그 34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곳은 창경궁의 한 내전으로 왕이 늘 거처하던 곳이며,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고,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가 승하했을 때는 빈궁(殯宮)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고 기둥사이에는 두세 개씩의 화반을 놓았다. 

건물의 내부에는 모두 우물마루로 변형되었다. 

외진평주(外陳平柱)와 내진고주(內陣高柱)를 배열하여 퇴량을 걸고 . 대들보(大樑)은 내진고주 사이에 걸었다.

 

 

 

 

 

환경전의 모습입니다.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는 말이 설명에 자주 나오는데 임진왜란이 얼마나 참혹했나를 암시해주는거 같습니다. 

 



함인정의 뒷쪽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이제 날이 점점 어두워져서 주변에 삼각대를 펼치시는분이 많더군요. 

저는 항상 가벼운 삼각대를 가지고 다녀서 부담없이 담을수 있었네요. 

은은한 초록빛이 아름다웠습니다.물론 옛날에는 이런조명도 없었겠죠. 

 



경춘전과 환경전을 화각안에 다 넣어봤습니다.

항상 도심 야경만 담는 저에게는 창경궁을 야경으로 담는다는것은 새로운 기분이 들었네요. 

물론 경복궁 야간개장때도 야경을 담긴 했지만 경복궁에 비해 창경궁은 아기자기 하다고나 할까요..

이날은 D7100의 액티브 D 라이팅 기능을 많이 이용했는데 암부가 잘 살아나고 고르게 분포되어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네요. 

 



경춘전과 환경전을 지나 뒷쪽으로 오게 되면 통명전과 양화당이 보이게 됩니다.!

 

 

 

양화당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던 인조가 환궁하면서 이곳에 거처한 일이 있으며, 

고종 15년(1878) 철종비 철인왕후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세벌대의 장대석 기단 위에 네모기둥을 세우고 초익공계 포작(包作)을 짰다. 

기둥사이에는 화반(花盤)없이 굴도리 밑에 장여를 받고 있는 소로만을 끼워 간결한 장식을 하였다.

건물의 내부에는 좌우엔 온돌방과 중앙3칸은 마루를 깔았고, 전면 중앙의 2칸에만 툇마루를 창 없이 개방하였다. 

외진평주와 내진고주 사이에는 툇보〔退梁〕를 걸었고, 그 위로는 연등천장을 하고, 안쪽으로는 우물천정을 하였다. 

대들보는 내진고주 사이에 걸었다. 


 

  

 

 

양화당의 정면모습입니다. 창경궁을 거닐면서 느낀것이 조명이 은은한 연두빛조명이 많더군요. 

좀더 넓은 화각으로 담고 싶었지만 16밀리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더군요. 

 

 

 

통명전

 

통명전은 창경궁의 연조 공간으로 명정전 서북쪽에 있으며,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 건물이다. 

창경궁 창건 때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이 되고, 다시 이괄의 난과 정조 때 화재를 입었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에 중건된 것이다. 

남향한 전면에는 월대를 두고 양모서리에는 청동제 드므를 놓고 그 북쪽에 외벌대 기단 한 단을 두어 건물을 세웠다.

정면은 7칸이고 측면이 4칸인 이익공계(二翼工系) 건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였다. 지붕 위에는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고, 전후퇴칸을 두었다.

북서쪽 일부의 방을 제외하고는 건물 내부 바닥에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정면으로 보아 양측에 2칸씩 방을 꾸몄음이, 1984년의 발굴조사에서 연도지(煙道址)가 노출됨으로써 확인되었다.

  

 

 

 


다른곳과 달리 통명전은 안쪽을 개방해서 관람객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단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되구요.

생각보다 안쪽이 안락하고 너무 좋았습니다. 일부 관람객들은 그곳에 잠시 누워 잠을 청하시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ㅎㅎ

저도 편히 누워서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이미 날은 어두컴컴해져서 빠르게 안쪽을 둘러보기로 하였네요. 

안쪽을 보니 잘 정돈되어있고 내부도 깔끔하였네요. 

 



오른쪽도 둘러보니 통명전의 안락함을 느낄수 있더군요. 

이곳은 ISO 2000으로 손각대로 담았는데 D7100의 고화질과 고감도의 성능이 대단하다는거을 느꼈네요. 

 



통명전은 역시 내부에 이렇게 달아놓았답니다. 그래서 내부를 공개한듯도 싶구요. 

 



통명전의 뒷쪽 모습입니다. 원래는 어두컴컴한 밤이고 암부가 심한곳이었는데 

D7100의 벌브샷을 이용해서 장노출로 담아보았습니다. 

장노출에도 핫픽셀도 생기지 않고 깔끔하게 담긴 모습이네요. 

 

 


양화당의 옆쪽모습이네요. 춘당저수지 오르막길 가기전에 한컷 눌러봤습니다. 

 



이제 춘당지로 가볼까 합니다.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서 장노출로 담다보니 관람객들이 유령처럼 표현이 되었네요. 

이것이 야경의 또다른 묘미가 아닐런지 ^^ 

 


 

춘당지로 가는길목에서 한컷 담아보았습니다. 

 

 

 

춘당지

 

춘당지는 1909년에 조성된 원지(苑池)이다. 두 개의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의 것이 1,107평방미터, 아래 것이 6,483평방미터이다. 

연못 속의 섬(366평방미터)과 1986년에 조성한 것이다.

춘당지는 현재 큰 연못과 작은 연못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아래쪽의 큰 연못은 원래 내농포(內農圃)라고 부르던, 왕이 직접농사를 지으며 농정을 살피던 논이었다. 

1909년 일본인들이 이곳을 파서 연못을 만들었고 이후 1986년에 한국식 연못으로 재조성한 것이다. 

춘당지 북쪽에 인접한 작은 연못이 조선시대 춘당지라 부르던 원래의 연못이다. 


 

 

 


창경궁의 또다른 묘미 반영샷을 이쁘게 담을수 있는 춘당지 입니다. 

역시 명정전만큼이나 수많은 관람객들로 삼각대 설치조차 어려웠던 곳이네요. 

그래서 삼각대를 짧게 펼쳐서 안쪽으로 들어가 어렵게 담을수 있었네요. 

주간에는 몰랐던 춘당지의 매력이 조명과 함깨 반영샷으로 더욱더 아름답게 표현이 되었습니다. 

 



좀더 화각을 망원으로 댕겨서 춘당지의 반영샷을 담아보았습니다. 

바람도 불지 않았던 따뜻한 날이라 반영도 잘 나온거 같습니다. 

 



아까 미쳐 담지 못하였던 명정전을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후 다시 담아봅니다.!!

늦은시간인데도 역시 수많은 관람객들이 관람을 하고 있더군요. 

가는 일요일이 아쉬워서 일까요..

 



저는 이구도를 가장 좋아합니다. 처마를 화각으로 두고 명전전을 오른쪽에서 다시 담아보았습니다. 

 



왼쪽으로 가서 구도를 잡아보았습니다. 

삼각대가 많이 보이는군요. 역시 옛날에 비해서 DSLR 보급이 높다보니 쉽게 진사분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원래 처마쪽에 암부가 심한편이었는데 D7100의 액티브 D 라이팅을 셋팅해주니 쉽게 암부를 살릴수 있었습니다.

 

 


밤이되니 명정전이 더욱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낮에는 몰랐던 부분이 야경에서 많이 보이듯이 말이죠. 

저도 그래서 야경을 많이 담나 봅니다. ^^

 



역시 명정전을 정면샷으로 담기가 쉽지 않네요. 

수많은 인파들로 삼각대 펼칠공간이 없어서 짧게 접어서 앉아서 담아야만 했네요. 

그래도 창경궁을 둘러보면서 옛고궁을 담는기분은 늘 새로운거 같습니다.

 



명전전을 정면으로 담는데 성공하였네요. 

관람객의 모습이 마치 시간이 흐르듯 유령처럼 표현이 되었습니다. ^^

 



좀더 뒤로 물러나서 명전전을 담아보았습니다. 

 



이제 시간이 많이 늦어서 명정전을 뒤로하고 명정문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밑에 모자이크 한부분은 어느 여성분의 짧은치마가 맘에 걸려서 모자이크를 햇습니다. ㅠㅠ 

이상한 상상은 말아주세요. ㅎㅎ 

 


 

이제 창경궁을 빠져나와 집으로 갈 준비를 합니다. 

역시 수많은 관람객들이 집으로 돌아가기위해서 명정문으로 빠져나오는 모습이 담겼네요. 

 

 

 

홍화문 

 

창경궁의 정문으로 명정전과 마찬가지로 동향하였다. 조선 성종 15년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광해군 8년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의 건물로, 기둥 위에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이 놓이고, 다포계 양식(樣式)의 공포를 짰는데, 

견실한 구조와 공포의 짜임은 조선 초기 형식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정면의 3칸에는 각각 판문을 달고 그 위로는 홍살을 하였으며, 

북쪽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마련돼 있다. 이층은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꾸몄다. 

홍화문의 좌우로는 궁장(宮墻)이 남북십자각을 지나 궁역을 형성하였다. 

 

 


 


원래 홍화문을 첨으로 소개를 했어야 했는데 거꾸로 마지막에 소개하는 이유는 입장할때 삼각대를 펼칠공간이 없어서 

나올때 담아보자 생각하고 담게 되었네요. 

작년 가을에 왔을때 D7000으로 담았을때는 밝은 조명탓에 플레어가 심하게 생겼었는데 D7100은 플레어가 거의 나타나지 않아서 만족한 샷이 나왔네요.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입니다. 주경과는 달리 야경의 아름다움은 바로 궁에서 나오는 은은한 조명에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창경궁

지금은 도심과 어울어져 멋지게 공존하고 있지만 잠시 옛날을 생각하면서 D7100과 삼각대를 가지고 소소하게 출사를 해보았네요. 

때론 멋진 먼곳보다는 서울근교 고궁을 돌아보는것도 여행의 소중한 추억이 될듯 합니다. 

D7100과 함깨한 여행지 추천 창경궁의 야간개장 포스팅을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늘 감사드리며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D7100 + 니콘 16-85VR



위사진은 전부 AF-S DX VR Nikkor 16-85mm F3.5-5.6 ED 렌즈로 촬영하였으며 

후보정은 니콘캡쳐에서 액티브 D 라이팅만 매우강하게로 바꾼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