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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View

[D7000,창경궁]창경궁 야간개장 그현장을 다녀오다.


[D7000,창경궁]창경궁 야간개장 그현장을 다녀오다.

아름다운 창경궁의 밤 야간개장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이미 많은 진사분들께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저도 간신히 자리를 잡았으나
역시 야경을 담기 녹녹하지 않은 시간이었네요 ^^
D7000바디와 렌즈 몇개 들고갔는데 다행히 화각이 맞아서 열심히 담아보았습니다.
오늘은 D7000으로 담은 창경궁 야경을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창경궁입니다.. 실제로 사진찍으려고 처음 가봤는데 상당히 이쁜 고궁이더군요 ^^
낮부터 준비하면서 주변 옥상에 올라가서 미리 담아보았습니다.



창경궁 메인뷰로 들어가서 해가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야간개장기간이 짧아서 엄청난 사진사분들로 북적여서 자리 잡기도 힘이 들었네요..
그래서 그런지 구도가 살짝 정면에서 벗어났습니다. 
간신히 자리를 잡긴 했는데 아쉽네요.


일명 매직아워라고 하는데 이때 주의해야 할것이 바로 하늘 부분입니다. 
보통 건물쪽에 노출을 맞추다보면 하늘이 하얀색으로 날아가기 쉽상입니다. 
푸른색을 살리기 위해서는 브라캐팅 촬영이 필수입니다.
총 노출을 한스탑씩 달리해서 브라캐팅 촬영을 한후에 적정노출을 골라서 포토샵에서 작업합니다.


보통 이사진은 건물에 노출을 맞추면 하늘이 날라갑니다...
노출언더로 사진촬영을 한장하고 브라캐팅으로 적정노출을 찍은뒤 
포토샵에서 살짝 만져줍니다...
이때 너무 과한 보정을 하게되면 자칫 그림처럼 보이거나 색이 틀어지는 경우가 있으므로 
되도록 사실적이고 포토샵에 의존하지 않게 아주살짝 보정해주는것이 관건입니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말이죠.. 




점점 밤이 깊어가고 하늘도 점점 검은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암부에 신경써주셔서 담으셔야 합니다. 
암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정노출을 최대한 자제를 하되
암부가 떡지고 죽지 않도록 유념합니다. 
평일인데도 날이 좋아서 그런지 인파들이 정말로 많네요..


 



하늘을 좀더 넣어보았습니다..
날이흐린날에는 노출오버를 살짝줘도 관계 없지만 
이날은 날이 정말로 좋아서 하늘색을 살려보고자 노출 한스탑 언더로 줬네요..



렌즈를 50밀리로 바까서 망원샷으로 담아보았습니다. 
하늘을 배제하고 창경궁의 메인부분을 함축해서 화각에 넣어보았습니다. 
많은 인파들로 인해서 사람 잔상이 생기는군요...
보통 다른분들은 야경찍을때 사람이 지나가면 인상을 찌푸리지만 
저는 오히려 앞에서 더 움직이시라고 권유를 합니다. ^^
사람의 잔상도 어쩌고 보면 야경의 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짝 왼쪽으로 가서 화각을 잡아보았습니다. 이제는 날이 많이어두워졌네요..



이제는 오른쪽으로 가서 다시 화각을 잡고 창경궁을 나왔습니다..
매직아워가 끝나서 하늘은 검게되고 사실상 메인샷은 별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원래는 이곳을 매직아워때 오를려구 하였으나 메인샷을 담고 싶어서 
함깨한 지인분과 메인을 먼져 담고 올랐네요..
올라가다가 경비원한테 걸려서 신분증과 시민작가증 맏기고 오른곳입니다. 
이미 하늘은 컴컴해지고 암부는 암부대로 너무 많아서
포기할까 하다가 암부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사진촬영에 임했습니다.
나무들의 녹색은 사라지고 암부로 인해서 검게 보이는군요..
하지만 암부를 너무 살렸다간 그림같은 사진이 될거같아서 최대한 자제하면서 
암부계조를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였네요... 



이제는 도심건물을 제외하고 화각을 좀더 밑으로 해서 담아보았습니다. 
역시 날이 어두워서 암부는 어쩔수 없었고 하는수없이 여기서 촬영을 종료하였습니다.
창경궁 야간개장이 다시 온다면 그때는 매직아워때 제대로 가서 담아보고자합니다..


D7000 + 8-16 + 18-70 + 30.4 + 50.4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1484년(성종 15) 당시 생존하였던
세 왕후(세조·덕종·예종)의 거처를 위해 옛 수강궁 터에 지은 것이다.
이때 지은 집이 명정전·문정전·수녕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과 양화당·여휘당 및 사성각 등이다.
전각의 이름은 서거정(徐居正)이, 정전(正殿)인 명정전의 상량문은 김종직(金宗直)이 지었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전각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고 나서도
 몇 차례의 화재가 있어, 그때마다 내전이 불탔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대체로 임진왜란 후에 재건한 명정전을 비롯한 그 회랑과
그 앞문인 명정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등 외전과,
1834년(순조 34) 다시 지은 숭문당·함인전·환경전·경춘전·통명전·양화당·집복헌·영춘헌 등의 내전으로 나눌 수 있다. 

궁의 배치를 보면, 동쪽 한가운데에 ‘凸’자 모양으로 불룩하게 나온 중심부분에 있는
 중층삼간누문(重層三間樓門)인 홍화문을 들어서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금천(禁川) 위에 놓인 옥천교가 있고, 이를 건너면 명정문과 좌우 행랑채가 있다.
이 문을 지나면 널찍한 뜰이 나오고, 그 일직선상의 중층으로 된 기단 위에 명정전이 있다.
홍화문 좌우의 행랑이 이 명정전까지 계속되면서 울타리를 이루어, 창경궁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명정문은 홍화문보다 높은 지대에 있고, 명정전은 명정문보다 한층 더 높은 곳에 있는데,
이러한 예는 창덕궁과 개성(開城)의 만월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순종 즉위 후 창경궁은 일제에 의하여 크게 훼손되었다.
1909년(순종 3) 일제는 궁 안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며, 한일합병이 이루어진 뒤인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또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맥을 절단하여 도로를 설치하였으며,
궁 안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수천 그루나 심어놓고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를 시작하였다.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관광시설로 이용되다가 1980년대에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을 세워
1983년 7월 1일부터 복원공사를 위하여 일반공개를 중단하였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원래의 명칭인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1984년부터 1986년 8월까지 동물원과 식물원 시설 및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문정전 등을 복원하였으며,
 벚꽃나무도 소나무·느티나무·단풍나무 등으로 교체하고
한국 전통의 원림(園林)을 조성하는 등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출처] 창경궁 [昌慶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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